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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기온이 내려앉은 골목으로 몇몇 행인의 발소리가 울린다. 1850년에 문을 열었다는 호텔 글로브 에 세실(Globe et Cecil)에서 나와 가스파랭 가(Rue Gasparin)를 따라 광장으로 향한다. 이미 해는 리옹 서쪽의 푸르비에르(Fourviere) 언덕 너머로 사라졌고, 어두운 남색빛만 하늘에 감돈다. 금요일 밤을 즐기러 온 현지인은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에서 무리를 지어 잠시 머물렀다가 좁은 골목 안으로 사라진다. 광장 한가운데 말을 탄 루이 14세의 동상은 어두운 실루엣에 감겨 있다. 말의 두상 너머로 푸르비에르의 노트르담 성당이 조명을 받아 빛난다.


프랑스 동부 론알프스, 조만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베르뉴 론알프스(Auvergne-Rhone-Alpes)라는 이름을 얻게 될지 모를 주의 수도 리옹은 불규칙한 나이테 같은 도시다. 광역 인구수로 따지자면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인데,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덕분에 여러 시간의 층위가 구시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하게 얽혀 있다. 2세기에 완공된 야외극장을 시작으로 11세기 중세부터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뒤섞이다가 19세기에 지은 실크 방직소 건물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도시가 펼쳐진다. 곳곳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통로인 트라불(traboule)은 건물을 통과해 다양한 시대의 골목과 골목을 이어주고 있다. 지리적 요소도 흥미롭다. 2개의 언덕과 2개의 강 그리고 그 사이 반도처럼 툭 튀어나와 자리한 다운타운이 조화를 이룬 구시가. 이름하여 푸르비에르 언덕과 크루아 루스(Croix-Rousse) 언덕, 손(Saone) 강과 론(Rhone) 강, 그 사이의 프레스킬(Presqu’ile).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는 아담해서 1시간 남짓 걸으면 동쪽 끝을 출발해 서쪽 끝에 다다를 수 있다. 언덕과 광장, 그리고 강 2개를 지나서. 누군가의 말마따나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의 도시다.


금요일 밤 벨쿠르 광장을 지나던 리오네즈(Lyonaise, 리옹 사람)는 맛에 대한 갈망으로 자갈 깔린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갈지 모르겠다. 그들은 미식에 대한 자존심으로 파리지앵과 경쟁하니 말이다. 리옹 출신의 유명 인사, 영화의 대부 뤼미에르 형제와 작가이자 파일럿인 생텍쥐페리가 프랑스의 문화 예술에 깊은 자취를 남겼다 해도, 페르 라세즈(Pere-Lachaise) 묘지에 잠든 파리의 영웅은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폴 보퀴즈(Paul Bocuse)라는 이름표를 꺼내면 파리지앵도 잠시 숨을 고를 것이다.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혹은 ‘미식의 교황’이라 불리는 리옹의 세프 앞에서는 파리의 모든 미슐랭 스타가 존경을 표할 테니까.


보퀴즈가 이 도시에 투여한 미식의 자취는 다채롭다. 일단 도시 곳곳에서 마주치는 벽화나 포스터, 책자 등이 시작이다. 이어서 그 자취는 1965년부터 미슐랭 별 셋을 유지하는 그의 메인 레스토랑 로베르주 뒤 퐁 드 콜롱주(L’Auberge du Pont de Collonges)와 전 세계 셰프 지망생이 모여드는 요리 학교 폴 보퀴즈 앵스티튀트(Paul Bocuse Institute)를 거쳐 리옹 시내에서 각각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는 6개의 레스토랑, 삼색기 스카프를 목에 두른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는 분야별 장인)가 육류를 썰고 디저트를 굽는 고급 식자재 시장 레 잘 드 리옹 폴 보퀴즈(Les Halles de Lyon-Paul Bocuse), 리옹 시내 르 로얄(Le Royal) 호텔에 들어선 요리 학교의 레스토랑과 단기 쿠킹 클래스 등으로 확장된다. 이 외에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폴 보퀴즈 레스토랑과 협력 요리 학교까지 따지면, 그는 이미 전 세계에 미식의 제국을 일군 셈이다.


보퀴즈가 교황처럼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우직하게 맛을 탐닉하는 리오네즈의 전통과 기질이 한몫하는 듯하다. 리옹은 파리보다 좀 더 좋은 식자재의 혜택을 받아온 도시다. 예전부터 론알프스에 산재한 4만여 개의 농장은 프랑스 최고의 와인, 치즈, 닭, 밤, 송로버섯, 누가 등을 생산해왔다. 사람들은 그 식자재에 각종 육류를 더해 리옹만의 전통 음식을 즐겼다. 다소 직설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부숑 리오네(Bouchon Lyonnais)를 찾아가보면 그 실체를 제대로 경험해볼 수 있다.


부숑의 사전적 의미는 선술집의 간판 구실을 하던 작은 짚단 더미다. 예전에는 문 옆에 짚단이 달려 있는 곳이 바로 선술집이었다. 리옹의 부숑은 독특하다. 옛 모습과 음식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 정부 차원에서 인증ㆍ관리한다. 현재 리옹에는 20개의 공식 인증 부숑 리오네가 영업 중이다. 그중 벨쿠르 광장 인근 마로니에르 가(Rue de Marronniers)에 자리한 샤베르 에 피스(Chabert & Fils)의 저녁 메뉴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식전주로 키르(kir)를 마시고 돼지 비계를 튀긴 그라탱(gratin)을 전채 안주 삼아 먹는다. 이어 부숑만의 전통 음식이 등장하는데, 갖은 육류가 그득 담겨 나온다. 눅진한 소스에 졸인 닭 간, 다진 돼지 내장, 송아지의 머리 고기와 혀, 리옹식 예스카지노 고기 완자 케넬(quenelle) 등. 고기에 대한 열정과 고기를 아는 사람만 먹을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뭉친 식탁이랄까? 모두 육류의 식감을 잘 살리면서도 비린내가 없다. 맛있다. 강한 풍미의 와인과 함께하면 더욱.


전통 부숑은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놓아 식사 때마다 옆 손님과 어쩔 수 없이 친분을 나누게 된다. 인사와 건배 그리고 수다의 순서로. 테이블이나 식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식기와 전체 실내 인테리어에 세월의 더께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리옹 사람들은 여전히 온 가족이 이런 곳에서 모여 먹는 저녁 식사를 즐긴다. 마치 언제나 명절이라는 듯이.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르네상스 시대 골목이나 옛 부두 일대를 개조한 콩플뤼앙스(Confluence) 지구로 가서 남은 밤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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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리옹의 손 강 너머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가 펼쳐진다.
부숑 리오네는 푸근한 분위기와 음식으로 방문객을 유혹한다.
리옹 시내 폴 보퀴즈 앵스티튀트에서 강의 중인 셰프 필리프 주스(Philippe Jousse).

 


Annecy 알프스의 눈이 녹아 운하가 되다

 

호수 옆 산악 도시 안시에 내린 빗방울이 운하를 따라 흩어지고 있다. 2개의 운하 양옆으로는 카페와 레스토랑, 숍 등이 줄을 잇는다. 프랑스의 작은 베네치아라는 별명은 약간 과장된 듯하나, 안시 호수(Lac d’Annecy)와 안시의 풍경은 자신만의 짙푸른 운치를 발한다. 1728년 3월 21일, 16세의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고향 제네바를 떠나 이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훗날 자신의 사상이 프랑스혁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전혀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저 제네바에서의 고된 삶을 피하길 원했고, 안시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픈 생각도 있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신교도의 발흥을 피해 제네바 주교가 이주해온 것처럼 안시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매우 큰 도시였다. 그런데 개종보다 더 큰 운명의 전환점이 루소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3월 21일, 와랑 부인(Madame Warens)을 만난 것이다. 제네바에서 온 청년보다 열두 살이 많았던 부인은 그날 이후 13년간 루소의 후견인이자 연인, 스승으로 지냈다. 훗날의 인연이나 이별 따위는 모른 채. 그녀가 없었다면, 루소도 프랑스혁명도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루소와 와랑 부인은 안시 구시가의 생피에르 성당(Cathedrale Saint-Pierre) 옆 작은 마당에서 마주쳤다고 한다. 오늘날 아담한 공원처럼 변한 그곳에는 루소의 흉상이 놓여 있고 그 아래 이런 문구가 새겨 있다. “Jean-Jacques Rousseau rencontrait Ici Madame de Warens(장 자크 루소가 여기에서 와랑 부인을 만났다).” 어떤 자료는 바스(Vasse) 운하 초입에 자리한 사랑의 다리(Pont des Amours)에서 둘의 사랑이 싹텄다고 하지만, 그 다리는 사랑도 끝나고 혁명도 끝난 19세기에나 완공됐다.


안시는 1860년이 되어서야 온전히 프랑스 땅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종교적ㆍ정치적 이유로 여러 공국과 왕국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오트 사부아(Haute-Savoie) 주의 중심 도시라 여러 행정기관도 모여 있는데,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안시 호수와 주변 산 그리고 고즈넉한 도심을 무대로 한 여행 산업이 이 지역을 이끌어간다. 12세기에 지은 이즐 궁(Palais de l’isle) 성벽에 부딪혀 갈라지는 티우(Thiou) 운하와 바스 운하를 따라 복잡하게 펼쳐진 구시가는 늘 여행객으로 붐빈다. 주황색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들 사이로 알프스의 능선이 겹쳐지고, 일렁이는 운하의 물결은 빛과 형상을 반사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수시로 걸음을 멈춰 눈앞의 장면을 확인한다.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걸어가고, 다시 멈추었다가 걸음을 옮기고. 노천 시장이라도 열리면 좁은 골목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시장의 매대에는 다양한 치즈와 소시송(Sausisson)이 쌓여 있고,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식자재도 더러 보인다. 구시가 골목과 운하 변의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식자재로 만든 진득한 전통 요리 사부아야르드(Savoyarde)를 맛볼 수 있다. 사부아산 치즈 르블로숑(reblochon)과 으깬 감자, 베이컨, 프룬 등을 넣은 파이 같은 파르송(farcon), 양파와 생크림을 더해 거대한 그라탱처럼 만든 타르티플레트(tartiflette), 알프스 산악 지역에서 자주 접하는 라클레트(raclette)와 퐁뒤까지. 현지인들은 높은 칼로리와 느끼함을 자랑하는 음식에 사부이 지역 와인을 곁들이며 알프스의 긴 겨울을 지금껏 버텨왔다.


약 40킬로미터 둘레의 안시 호수 주변은 고급 휴양지와 거주지로 각광받고 있다. 두터운 적란운에 가려 회색 빗방울이 떨어질 때도 산정의 마을은 아름답다. 더불어 다채로운 레저 스포츠를 만끽하기에도 좋은 환경 조건을 갖췄다. 현지인이든 여행객이든 여름에는 수상 스포츠, 하이킹과 등반, 패러글라이딩 등을 즐기고, 겨울에는 가까운 알프스의 스키 리조트에서 겨울스포츠에 도전한다. 마음껏 쉬어갈 생각이라면, 호수 위에 배를 띄워 에메랄드빛 물과 거칠게 솟은 암봉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해질 수 있겠다. 두툼한 파르송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 말이다. 연정과 혁명은 멈춰도 흐르는 운하와 알프스의 자연은 그대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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